해방기 한국 문학, 이론의 전환을 말하다: 담론 속 숨겨진 변화의 실체
해방기 한국 문학은 단순한 창작의 시간이 아니라 문학 이론의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식민지 시대의 문학적 구도에서 벗어나 해방 이후 새롭게 펼쳐진 이념과 현실 속에서 문학 담론은 격렬히 충돌하며 재정립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 전환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1. 해방기 문학 담론의 시대적 배경과 성격
1945년 해방은 한국 사회 전반에 급격한 전환을 몰고 온 역사적 사건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된 언어와 사상으로부터 해방된 작가들과 지식인들은 새로운 사회 건설에 대한 열망과 동시에 혼란 속에서의 정체성 모색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문학은 단지 감성의 표현이 아닌, 민족의 미래와 사상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매체로 간주되었으며, 이로 인해 문학 담론은 단순한 비평의 차원을 넘어 사상적 투쟁의 장으로 확장되었다. 해방 직후의 문학계는 좌익과 우익,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등의 대립 구도로 형성되었으며, 각 진영은 문학의 사명과 지향을 달리하며 자신들의 이론을 내세웠다. 이러한 담론의 충돌은 단순히 문학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이 사회와 역사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특히 조선문학가동맹과 같은 좌익 계열의 집단은 프로문학의 연장선상에서 문학의 계급성과 현실 반영의 의무를 강조했고, 반대로 자유주의적 비평가들은 문학의 자율성과 예술성 회복을 역설하며 이전의 통제된 언어로부터 해방된 표현을 추구했다. 이처럼 해방기는 한국 문학 담론이 이념적, 사상적으로 가장 분화되며 긴장되었던 시기로, 문학 이론 자체가 전환되는 격동의 장이었다.
2. 문학 이론의 전환: 리얼리즘과 형식 논쟁의 핵심
해방기 문학 담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전환은 바로 ‘리얼리즘’에 대한 관점의 변화이다. 일제강점기 하에서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혹은 은유적 리얼리즘이 주를 이뤘다면, 해방 이후의 문학은 보다 직접적이고 정치적인 현실 반영을 요구받게 되었다. 특히 좌파 문학 진영에서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강력히 주장하며 문학이 노동자·농민 계급의 현실을 대변하고, 계급투쟁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문학이 곧 혁명적 실천이라는 사고와 맞물려 있었으며, 문학 작품은 사실을 묘사하는 수준을 넘어 현실을 개조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받았다. 반면에 우파 혹은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이러한 강제적인 문학의 방향성에 반발하며, ‘형식’과 ‘자율성’을 문학의 본질로 보았다. 이들은 문학의 예술적 완성도와 개인 내면의 정서적 표현을 중시하며, 정치 이념의 하위 범주로 문학이 전락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러한 논쟁은 단순한 미학적 입장의 차이를 넘어서 문학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방식의 차이를 드러냈고, 해방기 한국 문학 이론의 진로를 결정짓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즉, 해방기는 리얼리즘의 개념이 단순한 기법의 문제가 아닌, 이론적 지형과 문학적 실천 전체를 규정짓는 논의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3. 담론의 충돌과 이후 문학사에 미친 영향
해방기의 문학 담론은 단순히 그 시기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 이 시기 제기된 문학의 사회적 책임, 현실에 대한 반응,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질문들은 이후 전쟁 문학, 산업화 시대 문학, 민주화 시기의 저항 문학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문학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형성했다. 특히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문학의 기능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해방 이후 한국 문학사가 여러 차례 겪은 정치적 변동과도 깊은 관련을 맺는다. 또한 해방기의 문학 논쟁은 문학비평의 방법론과 어휘, 텍스트 읽기의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등장한 김윤식, 김현 등의 문학 비평가는 해방기 담론의 연장선상에서 이론의 체계화를 시도하며 한국 문학비평의 전문성과 학문성을 강화해 나갔다. 해방기의 문학 담론은 따라서 일시적 충돌이 아니라, 한국 문학사의 뿌리 깊은 담론 지형을 형성한 결정적 국면이었다. 특히 이 시기의 담론이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 점에서, 단순한 사상 대립을 넘어 문학 이론의 존재론적 전환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깊다.
결론: 문학 담론의 전환, 해방기를 다시 읽는 이유
해방기 한국 문학은 창작의 활력만이 아니라 담론의 지적 전환을 동시에 경험한 시기였다. 문학이 정치와 이념, 예술성과 사회적 책무라는 다층적인 지점에서 어떻게 자신을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전개되었고, 이 속에서 문학 이론은 단순한 비평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현실과 맞닿은 실천의 도구로서 자리매김되었다. 이러한 이론적 전환은 한국 문학이 이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결정지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따라서 해방기 문학 담론의 분석은 단순한 과거의 논의 정리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읽어야 할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문학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동시에 그 시대를 넘어서는 사유의 공간이다. 해방기의 문학 담론은 그러한 문학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