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로서의 ‘국민’: 한국 문학이 재현한 국가 정체성의 서사
‘국민’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사회 구성원이 아니라, 시대적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정체성이 투영된 상징적 언어였다. 한국 문학 이론 속에서 ‘국민’은 국가와 민족을 동일시하거나 배제하는 서사의 중심축이 되었고, 문학은 그 정치적 기능을 수행했다. 이 글은 ‘국민’ 개념이 어떻게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고 재현해왔는지를 문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1. ‘국민’이라는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국민’이라는 단어는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의미가 지금처럼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였다. 조선 후기부터 개화기,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국민’은 단순히 나라의 백성을 의미하는 수준을 넘어, 근대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자의식과 역할을 가진 존재로 재구성되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황국신민’이라는 명목 아래 식민지 국민으로서의 존재가 강제되었고, 이는 한국인에게 ‘국민’이라는 개념이 어떤 억압적이고 이질적인 감각으로 작용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이후 해방과 함께 ‘국민’은 다시 민족국가의 주체로서 이상화되며 재편되었다.
이러한 변천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문학 이론에서 볼 때, ‘국민’이라는 개념은 서사의 중심에 놓이며 사회적·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장치로 작용하였다. 특히 1950년대와 60년대, 냉전체제와 반공이념이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할 때, 문학은 ‘국민’을 순응적이고 충성스러운 존재로 형상화했다. 이러한 ‘국민’은 ‘민중’이나 ‘시민’과 구별되며, 국가가 이상적으로 상정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즉, ‘국민’은 언어이자 기호이며, 특정 시대가 요구한 이상적인 주체로 끊임없이 재창조되어 왔다. 이 개념의 역사적 기원을 살피는 일은 단지 과거를 되짚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문학은 그 역사 속에서 ‘국민’이라는 상징을 어떻게 구성하고 재현해 왔는지, 본격적으로 탐색할 시점이다.
2. 한국 문학 속 ‘국민’ 재현의 정치적 함의
문학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재현하고 생산하는 장이다. 특히 한국 근대문학과 현대문학은 '국민'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서사의 배경으로만 다룬 것이 아니라, 주제 자체로 전면화하며 당대 정치 상황과 긴밀히 연결되어 왔다. 예컨대, 1950~60년대의 소설들에서는 '국민'이란 국가에 충성하고 반공 이념에 부합하는 인물로 자주 그려졌다. 이는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문학을 통해 정치권력이 국민에게 요구하는 이상적인 정체성을 설득하고 내면화시키는 장치로서 기능한 것이다.
더 나아가 1980년대 민중문학은 '국민'이라는 말을 다시 민중과 동일시하거나,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주체로 전환시켰다. 이 과정은 단지 단어의 의미 변화를 넘어 문학 이론 전반의 패러다임을 흔드는 중요한 전환이었다. ‘국민’이라는 용어가 국가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집단적 저항의 이름으로 사용되면서, 문학은 정체성 투쟁의 장이 되었다.
이처럼 '국민'은 문학 안에서 언제나 이데올로기적 위치를 가졌다. 중립적이거나 자연스러운 단어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정치적 요구 속에서 의미화된 결과물이었다. 따라서 문학을 통해 ‘국민’을 논하는 일은 곧 그 시대의 이념과 정체성의 구조를 해체하고 분석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는 문학이 사회와 긴밀히 호흡하며 ‘정치적 글쓰기’의 도구였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3. 정체성의 서사로서 문학, 그리고 배제의 구조
‘국민’이란 말이 언제나 모든 사람을 포괄한 것은 아니었다. 문학 속에서조차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포함되지 못한 이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탈북자, 이주노동자 등은 ‘국민’이라는 이상적 정체성에서 종종 배제되거나 주변화되어 왔다. 이는 문학이라는 장이 단지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동시에 배제의 서사를 구성하는 장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문학이 만들어낸 '국민'의 형상은 하나의 이상적 이미지에 가깝다. 남성 중심적이고, 이성애적이며, 중산층의 정서에 부합하는 모습이 주를 이루었다. 이로 인해, 그 외의 존재들은 ‘비국민’ 혹은 ‘미완의 국민’으로 분류되며, 서사 안에서 도구적 혹은 부차적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국가 정체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서사의 가장 어두운 이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의 문학에서는 이러한 배제의 서사에 대한 자각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주체들이 ‘국민’이라는 개념을 재구성하거나 거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문학적 틀을 전복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결국 문학은 정체성을 고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의 충돌과 협상을 담아내는 장이 될 수 있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힘을 직시하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문학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론: 문학, ‘국민’을 다시 묻다
‘국민’이라는 말은 단순한 정치적 범주를 넘어, 문학이 재현하고 구성해 온 복합적 상징체계다. 한국 문학 이론 속에서 이 개념은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며, 권력과 이념의 언어로 기능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이면에는 배제된 주체들, 보이지 않는 타자들의 이야기가 존재했다. 문학은 그런 배제를 조명함으로써 정체성의 복잡성과 모순을 드러내는 장이 되어 왔다. 이제 우리는 문학을 통해 ‘국민’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하고, 그것이 품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성찰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문학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구성해온 가장 정치적인 언어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