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이론의 전개 과정에서 본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상호작용

한국 문학이론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상호 긴장과 논쟁 속에서 전개되었다. 해방 이후 리얼리즘은 민족 현실과 계급 인식을 강조하며 주류 담론을 형성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모더니즘은 미학적 자율성과 언어 실험을 통해 이론적 지평을 확장시켰다. 두 흐름의 교차는 문학이론의 다양성과 현대성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 해방 이후 한국 문학장에서 리얼리즘의 이론적 우위

해방 직후 한국 문단은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국면 속에서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 과정에서 리얼리즘은 단순한 문학적 경향을 넘어서 당대의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고, 민족적 정체성과 계급의식을 고취시키는 이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프로문학 혹은 좌파 계열 문학은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에 기반하여 계급 갈등과 민중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지향했다. 리얼리즘은 이 시기 ‘참된 문학’으로 간주되었으며, 작가의 윤리적 책임, 사회 고발 기능, 현실 참여 등이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다.

1950년대에 들어 한국 전쟁 이후 문학은 전쟁의 참상과 분단 현실을 담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고, 이러한 배경에서 리얼리즘은 더욱 강조되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황순원, 이범선, 손창섭 등이 있으며, 그들은 인간 존재의 고통, 사회 모순을 서사적으로 구현하였다. 이처럼 리얼리즘은 문학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중심으로 문학이론을 주도하며 정통성을 획득하였다. 이론적으로도 김윤식, 김현 등의 문학평론가들은 리얼리즘의 개념을 재해석하며 한국 현실에 맞는 이론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흐름은 오랫동안 한국 문학이론의 주류로 작동하게 된다.

2. 모더니즘의 반작용과 자율적 미학의 실험 정신

리얼리즘의 절대적 우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일부 작가와 비평가들은 문학이 지나치게 이념적, 계몽적 역할에만 치우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문학의 ‘자율성’과 ‘예술성’을 강조하며 새로운 감수성과 형식 실험을 통해 모더니즘 문학을 시도하였다. 한국에서의 모더니즘은 1930년대 식민지 시기 김기림, 이상 등 선구적 시도를 통해 등장했으나, 정치적 억압과 해방 후의 이념적 분위기 속에서 한동안 위축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다시 부활의 기회를 맞는다.

특히 1960년대에는 ‘언어에 대한 인식’과 ‘형식 실험’이 본격화되면서 모더니즘은 단지 반리얼리즘적 흐름을 넘어서 하나의 독립된 문학이론으로 부상하였다. 이는 곧 후기구조주의, 실존주의, 심리주의 등의 철학적 이론들과 결합되어 문학 내면에 대한 탐구를 강화시켰다. 이 시기의 작가들, 예컨대 오규원, 김춘수 등은 언어의 자율성, 이미지 중심의 서정성을 강조하며 기존 리얼리즘과는 전혀 다른 지평을 제시하였다. 동시에 이들의 문학은 현실 도피가 아닌 ‘다른 방식의 현실 인식’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비평 이론 측면에서도 모더니즘은 이데올로기 중심의 비평 패러다임을 비판하며 형식주의, 구조주의, 해체주의 등 서구 이론을 적극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이론들은 문학 작품을 언어적 구조물로 보고, 텍스트 자체의 의미 생산 방식을 분석하는 데 집중하였다. 이는 문학이 독립된 언어 체계이며 자율적 예술로 존재할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3. 두 이론의 충돌과 상호작용이 문학이론에 끼친 영향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은 단순히 문체나 주제의 차이를 넘어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차이를 내포하고 있었다. 전자는 문학의 사회적 책임과 현실 반영을 강조하고, 후자는 문학의 자율성과 언어 실험을 중시하였다. 하지만 이 둘은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상호 긴장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국 문학이론의 지형을 구성해 왔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이후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모두에 대한 비판을 통해 탄생했다. 이 시기의 작가들은 기존 리얼리즘이 가진 구속성과 모더니즘의 난해함을 넘어서 일상의 파편, 다중의 시선, 주체의 분열 등을 형상화하며 새로운 문학 세계를 창조하였다. 이는 곧 문학이론 측면에서도 전통적 리얼리즘이나 형식적 모더니즘을 넘어선 혼종적 이론 구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문화연구, 페미니즘, 포스트식민주의 등 다양한 이론들이 한국 문학이론에 흡수되며 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분석이 가능해졌다. 이 과정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은 각각의 전통적 위치에서 벗어나 상호 보완적 또는 비판적 관계로 재구성된다. 오늘날의 문학이론은 리얼리즘의 사회성, 모더니즘의 미학성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는 한국 문학의 이론적 성숙과도 맞닿아 있다.

결론: 문학이론 분화의 동력으로서의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500자 이상)

한국 문학이론의 전개 과정은 단순한 양대 진영 간의 이념 투쟁을 넘어 문학의 본질과 역할을 둘러싼 지속적인 사유의 역사였다. 리얼리즘은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현실을 해석하고 사회를 고발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중심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모더니즘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문학의 미학적 가치와 언어 실험을 통해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지적 반응이었다. 이 두 이론은 상호 비판적 견제 속에서 한국 문학이론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으며, 다양한 시대적 요구와 감수성을 이론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결국 문학이론의 분화는 대립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재해석, 융합의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갔다. 오늘날 문학이론은 더 이상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단순한 구분에 머무르지 않고, 그 둘을 유기적으로 포섭하며 보다 다층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문학의 고유성과 동시대성, 그리고 세계문학과의 연결 속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문학이론은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며 계속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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