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전(正典) 형성과 문학 이론의 정치학: 제도화된 해석의 논리

한국 문학의 정전 형성과정은 단순한 문학적 평가가 아니라 제도와 이념, 정치적 해석의 개입 속에서 진행되어 왔다. 본 글은 한국 문학사에서 정전이 어떻게 형성되고 제도화되었는지를 살펴보며, 문학 이론이 어떤 방식으로 권력과 결합되어 해석의 경계를 설정했는지를 비판적으로 탐색한다.

1. 정전의 개념과 한국 문학에서의 형성과정

정전(正典, Canon)은 단순히 '우수한 작품들의 집합'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어떤 시대의 이념과 가치관, 문화적 권위를 반영하는 선택된 목록이다. 특히 한국 문학에서의 정전 형성은 근대국가 형성과 식민지 경험, 해방과 분단, 민주화 등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제도적으로 구축되어 왔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근대문학의 정전으로 자리매김한 김소월, 이상, 염상섭 등의 작가들은 그들의 문학적 성취 외에도 시대정신과 국가 이념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독해되었고, 학교 교과서와 문학사 서술을 통해 반복적으로 제시되면서 ‘정전’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정전은 자율적 문학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기보다는, 문학 교육 제도, 학술 담론, 국가 문화 정책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 속에서 구성된다. 특히 교육부 주관의 국어 교과서 편찬위원회나 문학상 심사위원회, 대학 문학 강좌 등의 영향은 정전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문학이 단지 미학적 가치만으로 판단되지 않고, 사회적 담론과 정치적 기준 속에서 평가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정전은 ‘무엇을 문학으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제약하기도 한다. 정전에 들지 못한 여성 작가, 민중 문학, 지역 문학 등은 정전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며, ‘비정전’으로 분류되거나 주변적 문학으로 소외된다. 이러한 배제의 과정은 문학을 해석하고 수용하는 데 있어 특정 권력의 작동을 드러내며, 문학 정전의 형성이 곧 문화 권력의 구조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 문학에서 정전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 문학의 해석과 수용을 결정짓는 정치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2. 문학 이론과 해석의 제도화: 권력으로서의 이론

문학 이론은 본래 문학 작품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도구로 발전해 왔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해석을 제도화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해왔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다양한 문학 이론들이 도입되었는데, 마르크스주의 비평, 페미니즘, 포스트구조주의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기존 정전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문학 해석의 지평을 넓혔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권력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 비평은 민중성과 계급의식을 중심으로 정전을 재해석하면서 기존의 엘리트 중심 정전을 문제 삼았다. 이는 문학을 사회적 실천의 도구로 보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비판적 담론을 독점하는 새로운 제도적 권위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학 이론은 단지 해석의 틀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어떤 작품이 의미 있고 중요한가를 규정짓는 기준이 되며, 해석의 권력 관계를 형성한다.

문학과 비평의 학술 제도도 이러한 권력을 뒷받침한다. 대학에서 가르쳐지는 문학 이론은 곧 문학 해석의 기준이 되며, 논문 심사나 학회 발표를 통해 ‘옳은 해석’과 ‘잘못된 해석’이 구분된다. 이는 독자의 자율적 해석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특정한 담론과 이론이 문학의 유효성을 결정짓는 기준으로 자리잡게 만든다.

또한 해석의 제도화는 문학 교육을 통해 사회 전반에 확산된다. 학생들은 교과서에 제시된 해석이나 비평문을 통해 문학을 이해하게 되고, 이는 문학적 상상력보다는 정해진 틀 내에서의 사고를 유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문학 이론은 권력의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특정한 해석을 강제하는 담론 장치로 기능하게 되며, 이는 정전 형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3. 한국 문학 정전의 정치학과 대안적 시선

정전은 중립적 결과물이 아니라, 특정 집단과 이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정치적 산물이다. 한국 문학의 정전 역시 국가 이데올로기와 시대적 권력의 산물로, 문학사 서술의 과정에서 누가 포함되고 누가 배제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권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1960~7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이념적으로 올바른’ 작가나 작품은 정전에 포함되었지만, 좌파 성향이나 비판적 리얼리즘 계열의 문학은 배제되거나 검열되었다.

또한 정전의 정치학은 젠더, 계층, 지역 등 다양한 사회적 요소와도 맞물려 있다. 한국 문학사에서 여성 작가들이 주요 정전에 포함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이는 여성 문학의 정당성이 비로소 문학 제도 내에서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전히 주류 문학사의 구도 속에서는 ‘보완적 존재’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아, 진정한 문학적 다양성과 포용성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안적 문학 정전을 구성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지역문학, 소수자 문학, 디지털 문학 등을 정전의 테두리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정전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대안적 문학관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정전을 재구성하려는 이러한 흐름은 단지 작품 목록을 바꾸는 것을 넘어, 문학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석의 기준 자체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결론: 정전과 해석, 그 정치적 역학의 재인식

문학 정전은 단순히 우수한 문학작품의 목록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권력이 반영된 산물이다. 특히 한국 문학에서는 이러한 정전이 국가, 교육 제도, 문학 기관 등 제도적 힘에 의해 형성되어 왔으며, 이는 문학 이론과 해석의 틀 속에서 더욱 공고화되었다. 정전의 형성은 곧 해석의 기준을 설정하고, 문학적 가치를 배분하는 행위이며, 이는 결국 문학을 둘러싼 권력 구조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정전의 정치성을 인식하고, 그 제도화된 해석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은 문학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제 우리는 정전이라는 틀을 절대적인 권위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는지를 면밀히 분석하고, 보다 다양한 문학적 목소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그렇게 될 때 문학은 특정한 권력의 도구가 아닌, 진정한 상상력과 자유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한국문학의 사회적 실천과 이론적 지형도: 근대에서 현대까지의 역사적 상관관계

한국 문학계에서 페미니즘 비평의 흐름과 서사적 특징 분석

존재와 해석 사이: 한국 현대 문학 비평의 철학적 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