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문학의 긴장관계: 한국 문학 이론 속 제도적 맥락 읽기
한국 문학 이론은 권력과 제도라는 틀 안에서 끊임없이 구성되고 변모해왔다. 문학은 순수한 미학적 영역을 넘어 제도적 권력과 상호작용하며 자신만의 담론을 형성해왔다. 본 글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권력이 어떻게 긴장하고 결합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한국 문학 이론이 시대별 제도적 맥락 속에서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1. 식민지 제국과 문학: 권력에 맞선 저항적 담론
일제강점기 한국 문학은 단순한 예술 활동을 넘어 식민 권력에 대한 저항의 무기였다. 이 시기 문학은 제국주의가 강제한 제도적 억압에 맞서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는 치열한 담론을 생산했다. 일본 제국은 교육, 출판, 검열 제도를 통해 조선인의 의식을 통제하려 했으며, 문학은 이 억압적 제도의 틈새를 파고드는 방식으로 민족적 기억과 저항 정신을 보존하고 확산시켰다. 대표적인 문학 운동으로는 1920년대의 민족주의 문학과 사회주의적 경향을 띤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있다. 이들은 문학이 사회 현실을 직시하고 민중의 고통을 대변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글을 썼으며, 이를 통해 권력에 직접 도전하는 담론을 구축했다. 그러나 일제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조선 문학가 협회'나 검열 제도 등을 통해 문학을 통제하려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작가들이 검열과 투옥, 심지어는 변절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시기의 문학 이론은 제국 권력이라는 거대한 제도적 장벽 앞에서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 역동적 담론의 장이었다. 문학은 권력의 억압을 단순히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생존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부딪치면서 스스로를 단련시켰다.
2. 국가 권력과 문학 제도의 형성: 해방 이후의 문학 이론
1945년 해방은 새로운 권력 질서 속에서 문학과 제도의 관계를 다시 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직후 문학계는 이념적 혼란 속에 빠졌고, 이는 곧 분단과 전쟁이라는 비극적 결과를 낳았다. 남한에서는 반공주의를 국시로 삼은 이승만 정부 하에 문학 또한 이념적 틀 속에서 재편되었다. 정부는 문인 단체를 조직하고 문학상 제도를 활용하여 '건전한' 문학을 장려하고, 반체제적 문학 활동을 억제하였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문학을 통한 권력의 정당성 확보라는 목적을 분명히 하였다. 동시에 문학 내부에서도 권력과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순수 문학'을 표방한 작가들은 문학의 정치적 이용을 거부하며 자율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순수 문학 역시 체제 내에서 일정한 제도적 보호를 받으며 권력과 미묘한 협력 관계를 맺게 된다. 북한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문학이 국가 권력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조선작가동맹'과 같은 조직은 문학을 혁명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삼아 국가 주도의 문학 제도를 확립했다. 이처럼 해방 이후 한국 문학 이론은 권력과의 긴장과 협력 사이를 오가며, 제도 속에서 담론을 생산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문학은 권력에 의해 제한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를 활용하거나 거부하면서 스스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3. 민주화와 시장 체제 속 문학: 권력의 변화와 담론의 다층화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민주화 운동을 통해 국가 권력의 직접적 통제로부터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문학 역시 이러한 사회 변동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게 된다. 1980년대 민중문학은 여전히 권력 비판의 선봉에 서 있었으나, 1990년대 이후 시장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문학의 담론 지형은 다층적으로 변화했다. 출판 시장의 확장과 대중문화 산업의 발달은 문학을 자율적 영역에서 상업적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경향을 강화했다. 이제 문학은 전통적 제도나 국가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과 독자라는 또 다른 형태의 권력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문학 이론 또한 기존의 이념적 대립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개별성, 정체성 문제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여성 문학, 퀴어 문학, 탈북자 문학, 다문화 문학 등 새로운 담론들이 등장하여 문학 내부의 권력 지형을 다변화시켰다. 또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웹소설, 온라인 문학 플랫폼 등을 통해 전통적 문학 제도를 흔들어 놓았다. 현대 한국 문학 이론은 권력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일방적 억압의 구조로만 보지 않고, 다양한 힘들의 상호작용과 긴장 속에서 문학이 어떻게 생성되고 소비되는지를 분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문학과 권력의 관계를 보다 복합적이고 유연하게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4. 결론
한국 문학 이론은 권력과 제도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자신을 구성하고 변화시켜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절박한 과제가 문학 이론을 이끌었고, 해방 이후에는 국가 권력과의 긴장 속에서 문학의 자율성과 역할이 새롭게 모색되었다. 민주화와 시장 체제의 도래는 문학이 다양한 권력 관계 안에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담론을 생성하게 했다. 이는 한국 문학 이론이 단순히 문학 내부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변화해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문학과 권력의 관계는 기존의 억압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 권력의 다양한 양상과 문학적 대응의 스펙트럼을 폭넓게 포착하려는 시도로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 문학 이론은 사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권력과 담론의 관계망 속에서 지속적으로 진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