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트루스 시대, 한국문학은 어떻게 진실을 해체하고 재서술하는가?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는 감정과 개인적 신념이 객관적 사실보다 우선시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문학은 진실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의심하며, 전통적인 서사구조와 윤리적 판단의 틀을 해체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문학이 포스트트루스 시대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으며, ‘진실’의 의미를 어떻게 재서술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1. 포스트트루스 시대란 무엇인가: 진실의 해체와 감정의 우위
‘포스트트루스(post-truth)’라는 개념은 2016년 옥스퍼드 사전에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며 대중화되었다. 이는 단지 사실을 무시하는 태도만이 아니라, 감정과 믿음이 사실보다 우선시되는 사회적 경향을 지칭하는 말이다. 진실은 더 이상 객관적이고 공적인 기준에 의해서만 평가되지 않으며, 개인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진실의 해석은 수없이 달라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와 언론, 대중문화뿐 아니라 문학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존의 문학은 보편적 진리나 윤리, 혹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서사를 구축해 왔지만,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문학은 이러한 기반을 의심하며 서사 자체의 구조를 다시 짜려는 시도를 보인다. 특히 한국문학에서는 집단기억이나 역사적 진실에 대한 기존의 신뢰를 흔들고, 개인적인 감정과 체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더 이상 작가가 제시하는 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 해석과 진실성 자체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재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문학이 진실을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진실을 해체하고 재편집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2. 한국문학은 왜 ‘진실’을 의심하는가
한국문학에서 진실에 대한 의심은 단지 서구 철학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수입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현대사는 식민지 경험, 분단, 독재, 산업화, 민주화 운동, 그리고 최근의 사회적 갈등과 혐오의 시대까지, 진실이 항상 권력에 의해 조작되고 은폐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작가들에게 ‘공식적인 진실’에 대한 불신을 내면화하게 만들었고, 문학은 그 불신의 기록장이자 저항의 수단이 되었다. 예를 들어 1980년대의 문학은 국가 권력에 의해 왜곡된 진실을 복원하려는 저항 문학이 주류를 이뤘다면, 2000년대 이후의 문학은 그보다 더 복잡한 차원에서 진실 자체의 불확실성을 다룬다. 정유정, 김영하, 한강 등의 작가들은 명확한 윤리적 대답이나 역사적 진실보다, 인간의 감정과 기억 속에서 왜곡된 진실을 탐구하고 있다. 이때 진실은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시대와 개인의 시선에 따라 무수히 분화되는 유동적 개념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한국문학은 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진실이 누락되었는가’, ‘어떤 감정이 억압되었는가’를 묻는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한다. 즉, 문학은 사실과 감정, 역사와 개인 사이의 틈을 파고들어, 진실의 새로운 층위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3.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한국문학, 진실을 어떻게 재서술하는가
진실을 해체한 이후의 문학은 단순히 공백만을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공백 위에 새로운 언어와 서사를 구성하며 ‘재서술’의 장을 연다. 특히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한국문학은 기존의 서사 틀을 해체하고, 개인의 경험과 주관적 감정에 기반한 이야기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예를 들어, 김애란의 소설에서는 젊은 세대의 감정적 진실이 사회적 사실보다 더 강하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또한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광주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다룰 수 없는 침묵과 감각의 언어로 서술함으로써 진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강하게 진실을 전달한다. 이처럼 진실은 더 이상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는 것’을 통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서사 전략은 진실이 단지 팩트의 축적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맥락 속에서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문학은 이처럼 진실을 재서술하기 위해, 객관적 사실보다 인간의 내면과 감정,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역사에 주목한다. 진실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말해지고, 다시 구성되어야 하는 서사적 과정이 되는 것이다.
결론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도래는 단순한 정보의 왜곡이나 정치적 선동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을 문학 속에서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국문학은 이러한 시대적 전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과거의 ‘진실’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체하고, 다시 써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단지 기존의 권력과 서사 구조에 대한 저항만이 아니라, 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진실이 단일한 실체가 아닌, 감정과 기억, 그리고 맥락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라면, 문학은 바로 그 구성의 장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국문학은 진실을 해체함으로써 공허함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빈 공간 속에 새로운 서사와 감정을 채워 넣음으로써 더욱 풍부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포스트트루스 시대, 한국문학은 여전히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다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구성하는가’의 문제로 이행된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 전환은 우리가 진실을 새롭게 사유하고 감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