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이론의 정체를 묻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한국문학 이론은 단순한 해석 틀을 넘어 문학의 존재 방식과 사회적 위치를 결정짓는 지식 체계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그 이론들은 과연 자생적 체계를 갖추고 있는가? 이 글은 한국문학 이론이 전통과 현대, 서구와 지역 사이에서 어떠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그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탐색한다.


1. 한국문학 이론의 기원, 자생적 체계인가 수입된 담론인가

한국문학 이론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그것은 근대문학의 형성과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이론들은 실질적으로 자생적인 학문 체계라기보다는 대부분 서구의 이론 체계를 번역하거나 차용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더욱 두드러졌는데,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을 통해 수입된 문예학이나 미학 개념들이 곧장 한국문학 교육의 틀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후 1960~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 실존주의 등의 서구 사조들이 번역되고 소개되며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지만, 그것들이 한국의 문학적 현실과 조응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론의 수입이 문학 현실의 분석 도구로 기능했다기보다 일종의 권위적인 틀로써 ‘이해해야만 하는 체계’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론이 단순히 해석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라는 점이다. 특히 한국문학 이론은 근대 이후 '국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 담론과 깊게 결합하였다. 이는 문학이 민족적 자아를 형성하는 도구로 기능해야 한다는 당위와 함께, 외래 이론의 해석적 도입과 모순을 낳았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과연 한국문학 이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정말 한국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즉, 한국문학 이론은 스스로 자생적 체계를 구성하려는 시도보다는, 외래 담론을 번역하고 조립하여 ‘국문학’이라는 명분 아래 정체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2. 전통의 재구성과 현대성의 불균형

한국문학 이론은 전통을 강조하면서도 현대성과의 접점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담론 구조를 형성해왔다. 전통문학과 현대문학을 단절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으며, 전통은 ‘계승해야 할 미덕’으로, 현대는 ‘극복해야 할 위기’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이러한 이분법적 시각은 이론 내에서도 반복되었다. 특히 고전문학의 분석에서는 유교적 가치체계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민속학적 관점을 차용한 해석이 주류를 이뤘고, 이는 전통을 정형화하고 고정된 문화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전통의 해석이 얼마나 현재의 삶과 언어, 문학적 감수성과 소통 가능한가이다. 과거를 단순히 미화하거나 이상화하는 시각은 현실의 문학적 표현과 괴리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특히 현대문학에 있어서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언어와 형식을 적극 수용해야 함에도, 한국문학 이론은 여전히 전통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변화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는 결국 문학이 사회를 반영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본연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한국문학 이론은 이론 내부의 일관된 철학적 체계 없이, 시대마다 유행하는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학문적 정합성과 분석력보다는 인용의 권위에 기대는 모습이 반복되었고, 이는 문학 현장과 이론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켰다. 문학이 현실의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선,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이론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한국문학 이론은 그 경계를 강박적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해왔다.

3. 한국문학 이론의 미래를 위한 비판적 성찰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한국문학 이론의 어떤 방향을 모색해야 할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권위와 형식을 의심하고, 그것이 문학적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냉정히 검토하는 자세이다. 단순히 서구 담론을 수입하고 번역하는 작업에서 벗어나, 한국의 문학적 맥락과 언어, 사회적 경험에 기반한 해석 모델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이론 자체에 대한 메타비평, 즉 '이론에 대한 이론'이 적극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또한 대학이나 학계 중심의 폐쇄적인 담론 구조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문학은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며, 독자와의 소통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텍스트다. 그러므로 이론 또한 보다 열려 있는 구조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이는 독자 참여적 해석, 다중적 의미의 수용 등 새로운 해석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문학 이론이 더 이상 ‘정체성’이라는 강박에 얽매이지 말고, 유동적이고 다원적인 관점 속에서 문학과 사회를 해석하는 틀로 발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학이 현실을 반영하고 사회를 비판하며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활동이라면, 이론은 그 문학적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반성적 도구여야 한다. 한국문학 이론이 이제껏 축적해온 전통을 해체하고, 새로운 의미 지평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그것은 살아있는 담론이 될 수 있다.

결론: 문학 이론, 허상 너머의 길을 모색하다

한국문학 이론은 긴 시간 동안 그 나름의 정체성과 체계를 형성해왔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생적인 이론이었는지, 혹은 번역과 수입을 통해 구축된 담론의 모방이었는지를 묻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 서구와 지역 사이에서 이론은 스스로의 좌표를 명확히 설정하지 못한 채 흔들려왔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흔들림을 마주보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새로운 이론적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문학 이론은 더 이상 고정된 지식 체계가 아니라, 지속적인 질문과 해석의 장으로 기능해야 한다. 정체성을 넘어서는 사유, 고정된 전통에서 벗어난 해석의 유연성,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과 현실의 유기적 연계를 모색하는 태도야말로, 앞으로의 한국문학 이론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이론은 결코 실체가 아닌, 우리가 그 실체를 구성해가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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