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 이론 논쟁의 역사와 오늘 – 정체성에 대한 학술적 고찰」

한국 문학 이론의 정체성 논쟁은 해방 이후 민족문학론과 실천 비평의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외래 이론의 수용과 한국적 문학 조건 사이에서 균형점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이론의 토착화 여부는 여전히 핵심 논점이다. 본 글은 이러한 논쟁의 전개 양상과 실체적 기반을 살펴보고, 한국 문학 이론의 정체성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거나 위협받았는지를 검토한다.


1. 한국 문학 이론 논쟁의 역사적 배경

한국 문학 이론의 정체성 논쟁은 단순히 문학 해석 방법에 대한 이론적 차이를 넘어, 문학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며, 그것이 어떤 이념적 토대 위에 놓여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특히 해방 이후 문학의 민족적 정체성을 재건하고자 했던 노력은 비평적 실천으로 이어지며 이론 형성의 주요한 동기가 되었다. 1970~80년대에는 민족문학론을 중심으로 한 좌파적 실천 비평과, 당대 유럽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의 수용 사이에서 극명한 입장 차이가 드러났다. 이 시기의 비평가들은 문학 이론이 단지 해석 도구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개입 수단이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로 인해 한국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자생적 이론 형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당시 문단의 양극화는 한국 문학 이론의 통일된 정체성 확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외래 이론의 무비판적 수용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한국 문학 이론 정체성 논쟁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던 시기였다.

2. 이론 수입과 자생성의 긴장 관계

문학 이론의 외래 수용은 한국 문학 연구에 신선한 시각을 제공해왔지만, 동시에 그것이 한국 문학의 고유한 조건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예컨대, 러시아 형식주의나 프랑스 구조주의 이론은 텍스트 중심의 분석이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지만, 한국 현대사의 분단과 군사독재, 산업화 등의 맥락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일부 비평가들은 ‘한국적 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토착화 혹은 변용의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론의 토착화가 곧바로 이론의 자생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민족문학론이 보여주었던 이론과 실천의 결합 역시 일정한 이념적 경직성을 동반하면서, 이론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따라서 한국 문학 이론의 정체성은 단지 국산화된 이론의 구축에 있지 않고, 이론과 문학, 그리고 사회 현실 간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조정되고 구성되어야 할 대상임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문학 연구자들은 단순한 이론의 번역이나 수입이 아니라, 한국 문학이라는 특수한 텍스트와 맥락에 맞는 이론적 틀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비판적 고민을 거듭하게 되었다.

3. 오늘날 한국 문학 이론의 실체와 과제

21세기 들어 한국 문학 이론의 정체성 논쟁은 이전만큼 격렬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유효한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디지털 문학, 젠더 이론, 탈식민 담론 등의 새 흐름은 기존의 문학 이론 체계를 흔들며, 이론 자체의 다원성과 유동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문학 이론은 더 이상 고정된 틀로 설명될 수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목소리와 경험이 공존하는 열린 체계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문학을 설명하고 분석하기 위한 고유한 이론적 토대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곧 한국 문학 이론의 ‘실체’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론은 축적과 비판을 통해 생성되는 것이며, 단기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 문학계는 기존 이론의 단순 수용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변화된 감각과 경험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비평 언어와 이론적 체계를 요구받고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과제는 한국 문학을 대상으로 한 이론이 존재하느냐의 문제보다,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실천하고 구성해나가야 하는가에 있다. 이를 위해 문학 이론의 교육, 학술적 담론 형성, 그리고 창작 현장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실천적 전략이 필요하다.

결론

한국 문학 이론의 정체성 논쟁은 단지 학술 담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문학이 처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과 깊이 맞물려 있는 문제다. 외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문학의 실천성과 맥락성을 무시하게 만들고, 반대로 이념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자생 이론 추구는 이론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제한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론의 ‘순수성’이나 ‘출처’가 아니라, 한국 문학이라는 구체적 대상과 맥락에 어떻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한국 문학 이론은 이제 고정된 이론 체계를 구축하기보다는,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비판, 다양한 관점의 공존 속에서 자신을 갱신해나가는 개방된 구조로 이해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한국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그에 상응하는 이론적 언어를 창출해내는 비평적 실천에 있다. 이러한 실천 속에서 한국 문학 이론의 실체적 기반은 점차 공고해질 수 있으며, 이는 곧 이론의 정체성이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유의미한 응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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