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속 경계인 존재, 디아스포라적 시선으로 읽기

한국문학은 오랜 시간 ‘경계인’이라는 존재를 통해 사회적, 역사적 타자성을 탐구해왔다. 특히 디아스포라적 관점에서 바라본 경계인의 서사는 한국인의 이주 경험, 분단 현실, 그리고 다문화 시대의 정체성 문제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본 글에서는 한국문학에 나타난 디아스포라적 경계인의 재현 방식을 중심으로 현대 문학의 경향과 그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1. 디아스포라와 경계인의 개념: 문학적 재현의 출발점

디아스포라는 단순한 이주의 개념을 넘어서, 뿌리 잃은 존재가 새로운 장소에서 겪는 소속감과 정체성의 혼란, 그로 인한 문화적 긴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국문학에서 디아스포라적 시선은 주로 분단 이후 이산가족, 조선족, 재일동포, 해외 입양인, 그리고 최근에는 결혼이주민이나 노동이민자 같은 다문화 주체들을 통해 표현되어 왔다. 이들은 단순히 다른 공간에 있는 이방인이 아니라, 중심과 주변, 자국과 타국, 동일성과 타자성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경계인’으로 묘사된다.

문학에서 경계인은 언제나 ‘중간자적 위치’에 서 있다. 예컨대, 재일조선인 작가 유미리의 작품은 일본 사회에서 타자로 규정된 자신의 존재를 이야기하면서도, 조국 한국에서도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의 고통을 드러낸다. 이러한 디아스포라 서사는 민족주의나 혈연 중심적 정체성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가-민족’ 중심의 경계를 넘는 상상력을 요청한다.

이와 같은 문학적 접근은 경계인을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다층적인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재구성하며, 한국문학의 지형을 다층적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경계인의 서사는 단지 소수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정체성과 경계를 반추하는 거울로서 기능한다.

2. 한국문학 속 디아스포라 서사의 전개 양상

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은 세계화와 탈냉전, 그리고 탈식민주의 담론의 영향을 받으며 디아스포라 서사가 본격화되었다. 특히 제3세계의 이주민, 혼혈아, 탈북민 등 다양한 ‘경계적 존재’들이 문학의 중심 서사로 부상하면서, 이들은 더 이상 주변적 인물이 아닌 서사의 주체로 자리 잡았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광주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지만, 고통과 상실을 겪은 이들이 ‘잊히는 존재’가 되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내면적 디아스포라를 경험하는 인물들을 묘사한다. 또한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에서는 북한 출신의 망명자가 벨기에에서 겪는 문화적 소외와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통해 진정한 고향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이러한 디아스포라 서사는 단지 이주 자체가 아닌, ‘재현되지 않는 고향’에 대한 상실과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한다. 결국, 이들은 고향을 향해 가는 여정이 아니라,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존재’로서 세계를 헤매는 경계인의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문학은 이러한 이방적 시선을 통해 오히려 중심부의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한국적 정체성에 내재된 폭력과 배제의 구조를 성찰하는 기회를 마련해 왔다. 이는 문학이 단지 국가적 서사를 지지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경계를 비판적으로 되묻는 중요한 장르임을 증명한다.

3. 디아스포라 서사를 통한 한국문학의 확장 가능성

오늘날 한국사회는 다문화 시대에 진입하며 경계인의 서사가 일상화되었다. 결혼이주민, 외국인 노동자, 난민과 같은 주체들이 현실적으로도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반영한 문학 작품 또한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이는 한국문학이 더 이상 단일민족, 단일정체성을 전제로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디아스포라 서사는 이를 가장 예민하게 포착해낸 장르 중 하나다. 특히 소설은 인물의 내면과 감정, 기억, 그리고 사회적 억압을 깊이 있게 탐색할 수 있는 장점을 통해 경계인의 복합적 현실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김숨, 한유주, 김연수 등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체를 통해 경계인의 삶을 미학적으로 그려낸 대표적 작가들이다.

무엇보다 디아스포라 서사는 독자에게 ‘타인의 삶’을 공감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이주와 추방, 상실과 재정립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자신이 당연하게 여기던 정체성과 공동체의 개념을 낯설게 바라보게 된다. 이는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성찰의 기회이자,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상상력이다.

경계인 서사의 확장은 곧 한국문학의 세계화와도 연결된다. 다양한 정체성과 문화적 배경을 포괄하는 이야기는 국내를 넘어서 해외 독자들에게도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으며, 이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


결론: 경계인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한국문학

경계인은 더 이상 문학의 주변부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경계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한국문학의 중심 서사가 무엇을 배제해왔는지를 성찰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적 존재는 단지 국경을 넘어온 이들이 아니라, 존재론적 경계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며, 그들의 서사는 한국문학의 경계를 확장하고 재구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문학은 이러한 경계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넓은 사회적 감수성을 일깨우고, 정체성과 소속, 타자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문학은 앞으로도 디아스포라적 존재를 통해 자기 성찰의 공간을 마련하고,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지속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문학의 과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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